[석유왕 존 데이비슨 록펠러의 관상과 물형]

[석유왕 존 데이비드슨 록펠러의 인상착의 물상] 세계 최고의 부호였던 데이비드슨 록펠러의 생애를 파고들며 그의 인상착의를 캐내는 것은 별로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록펠러, 카네기, JP모건 등 미국 근대 최고의 부호들을 보면 록펠러의 관상을 지나칠 수 없었다. 록펠러에 관한 에피소드는 수없이 많은데 그가 정말 회개했을까? 얼굴이 왜 저렇게 변했을까?이게 록펠러 얘기를 들을 때마다 가슴 한구석에 있는 화제였다. ​​

록펠러의 석유 얘기를 꺼내기 전에 먼저 봐야 할 책과 영화를 권한다. H 멜빌이 쓴 소설 백경 Moby Dick과 백경의 원시적 계기가 된 소재를 그린 영화 하트 오브 더 시 in the heart of the sea의 책과 영화는 볼 만하다. 책의 시선이 예리한 마루야마 겐지도 소설 백경을 칭찬한 기억이 있다. 기름을 얻기 위해 무참히 고래를 잡던 시절이었으니 고래 기름이 필수품이던 시절 유전이 처음 발견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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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라면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인 존 데이비드슨 록펠러다. 1839년 뉴욕에서 태어난 그는 고등학교 다닐 때 아버지는 25세나 어린 여자를 집에 데려와 함께 살았다. 잠시 후 둘째 부인과 함께 캐나다로 떠났지만 그는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았다고 한다. 고교를 졸업하고 취업전선에 뛰어든 그는 작은 기업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타고난 욕망과 배짱을 가진 그였기에 이리저리 일자리를 알아봤지만 마땅한 일자리가 없어졌고 직업전문학원에 들어가 상업적 기초를 배운 뒤 잡화운송회사에 경리과 직원으로 취직했다. 20대의 동업으로 잡화 운송회사를 설립해 부업으로 석유사업에 손을 댔다. 그는 부업이던 석유 사업이 번창하자 석유 사업에 매진하여 스탠더드 석유 회사를 설립했다 그는 이 시대 최고의 범죄자로 불릴 만큼 악랄한 행위에 편법을 쓰면서까지 미국에 있는 대부분의 정유사를 인수합병해 버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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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7년 38세에 슈퍼 갑부가 된 록펠러는 정치인과 언론에 뇌물을 주는 것은 당연하며 경쟁자를 파멸시키기 위해 간첩을 고용하고 경쟁사의 송유관 건설을 방해하기 위해 송유관 통과지역에 땅을 사서 팔지 않고 일명 달걀치기에 정수를 보였을 뿐 아니라 1914년 탄광에서 광부 2만 명이 파업을 벌이자 진압 과정에서 20여 명을 숨지게 한 로드러 학살사건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이런 만행을 저지르면서도 역설적이게도 그는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십일조를 자주 헌금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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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펠러의 젊은 시절 사진은 많지 않다. 중년의 록펠러 사진 한 장을 보면 얼굴에 각진 데가 없고 멋을 부리지만 노년의 그의 얼굴은 그렇지 않다. 55세에 불치병에 걸려 잘 살지 못할 것이라고 투병생활을 했지만 그 후 그의 외모가 많이 바뀌었다. 나쁜 짓을 너무 많이 해서 당연히 상학에 그런 흔적이 드러났다고 한다. 중년 사진에서 록펠러 상학을 보면 목형으로 약간 긴 얼굴에 이마와 코의 기운이 아주 좋다. 이마의 텐로쿠 산근에서 코까지 쭉 전해져 내려왔다. 말 그대로 하늘이 내려준 복을 어디서든 방해받지 않고 제대로 실행할 수 있도록 형성된 관상이다. 과연 눈이 그 복을 어디에 쓰는지 속으로 작용하지만 그의 형태부터 재물과는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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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록펠러를 이무기상으로 판명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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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자서전에는 55세의 죽음의 문턱에서 회개했다고 한다. 사람은 누구나 회개하면서 살지만 필자는 록펠러가 55세에 나름대로의 깨달음부터 완전히 회개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가 99세까지 살면서 심장수술을 여섯 번이나 받으면서 인생의 더 편향을 보았을 것이다, 만년에 그의 상을 보면 많은 것을 놓아서인지 조금은 편안해 보인다.사마천은 “어떤 사람의 죽음은 깃털처럼 가볍고, 어떤 사람의 죽음은 태산처럼 무겁다”고 했다. 필자는 록펠러의 삶이 산더미 같지는 않다. 그는 단지 그에게 주어진 물질 역할을 했을 뿐이다. 덕해산가 록펠러 관상 구렁이상 백경 하트오브더씨 마루야마 겐지 추천책 스탠더드 오일 일루미나티 13가 록펠러의 일생